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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_190218 실사영화

 <어느 가족>이 그저 고레에다 월드의 집대성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뭔가'가 있는지 쭉 궁금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한참을 길게 생각했다. '그 이상의 뭔가'는 결국 없었다 할지라도, 과연 이 조각모음이 황금종려상을 차지할만 했는가, 혹시 감투상 아닌가 하는 의문만은 사라졌다.
 시간축과 공간축이 있다. 영화 속 가족은 하츠에 할머니의 죽음을 분기로 모여들다가 흩어진다. 모여드는 과정 하나하나는 개연성 이전에 고레에다식 유사가족 인력引力이며, 흩어지게 만드는 것은 일본 고유의 상냥한(優しい) 척력斥力이다. 이건 가족을 다룬 대부분의 고레에다 영화에서 나타나는데 <어느 가족>에서는 유독 정확히 나뉜다. 서로 돌보는 공간은 집, 각각을 계도하는 공간은 대체로 공무소인데, <아무도 모른다><걸어도 걸어도>는 전자로, <세 번째 살인>은 후자로 채워져 있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는 혼재되어 있다. 이 공간은 <어느 가족>에서 하츠에의 죽음 전후로 정확히 나뉜다.
 그밖에 고레에다 영화의 목소리는 갈수록 동그래지는 느낌이 있었는데, <어느 가족>의 목소리는 동글동글했다. 그건 감독의 나이듦에서 가장 크게 기인했겠지만, 이 영화의 어른 남자가 아베 히로시도 후쿠야마 마사하루도 아닌 릴리 프랭키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담으로, 영어 타이틀Shoplifters과 한글 타이틀을 합치면 비로소 원제가 된다.


 감독의 책(《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일본의 TV가 한때 무척 자유로운 현장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작고 현실적인 전위前衛를 분명 우리네 TV에서도 느끼던 시절이 짧게나마 있었다. 이제 TV는 죽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만이 살아남아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영화가 되어버린 오래 전의 TV를, 다큐를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그의 작품이 집대성되었다.
 나는 이제 도무지 또 다른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상상할 수 없다.



어느 가족 万引き家族 2018 

★★★★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樹木希林  1943. 1.15 ~ 2018. 9.15
さよなら、ばあちゃん。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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