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위의 통나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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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작법서에 관한 생각 만화 관련 생각

지금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만화 작법서라면 안수철 교수의 만화연출, 나도 할 수 있다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의 손에 쥐어졌을 박무직 작가의 박무직 만화공작소 중급편 - 디지털 만화 작법과 만화연출 온라인 서점에선 절판 상태다. 두 책은 만화 작법서 영역에 있어 불모지나 다름 없는 한국에서 책을 펴내 새 장을 개척해냈다는 점만으로 큰 의의가 있고 내용 또한 제법 충실하다.
'만화연출, 나도…' 과 같은 경우는 기존 만화원고들을 예시로 삼아(400여페이지나 되는 책의 분량에서 보듯 그 수가 상당하다) '이 장면을 이렇게 연출한 의도'는 무엇인지, 하나 하나에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였다. 원고를 그리던 중에 상황묘사에 있어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 참고해볼 만하다. '박무직 공작소…'는 디지털 작법과 연출이라는 두 개의 큰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다는 데다 책 중간중간에 도구사용법과 기초적인 드로잉에까지 사설을 푸는 등 다소 두서없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꼼꼼하고 가급적 쉽게 설명하려 노력한 박 작가의 정성은 분명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이 괜찮은 책 두 권을 지도 삼아 만화를 그려보려고 하는 사람들(지망생들)이, 과연 끝까지 길을 잃지 않고 '괜찮은 작품 완성'이라는 이정표가 새겨진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림이야 당연히 훌륭하게 완성시켰는데, 뭔가 아닌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이야기가 잘 이해되지 않거나, 한 컷 한 컷 눈을 옮겨가기가 힘든 만화들이 나온다.
기성 작품들 속에서 좋은 연출과 기법을 오려내 부분부분 모자이크하듯이 꾸려간다고 해서 훌륭한 작품이 나온단 보장은 없다. 만화의 한 컷은 그냥 거기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앞 뒤에 놓인 다른 컷들과 어떻게 이어지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페이지가 배열되고 하나의 단편, 장편이 완성된다.

만화라는 세계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의 숫자는 한참 붐이었던 십여 년 전보다 줄어든 게 사실이다. 만화를 그려서는 먹고 살기 '더' 힘든 세상이 됐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웹툰이라는 특별창구가 생긴 덕분에 기술적인 진입 장벽은 한참 낮아졌다. 곡절은 있었지만 여전히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만화를 그리려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만화 속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표류하고 있고, 기획과정이 필연적으로 부실할 수밖에 없는 웹툰세계엔 읽기 난감한 작품들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괜찮은 지도 한 장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 기획 방향은 어떻게 설정해야할 것인가?
당연히 위에 소개한 두 책과는 다른 내용을 채워넣어야 한다.

1. 이 모자이크 조각(컷, 페이지, 분기)들을 어떻게 연결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구축해갈 것인가. 문제를 던지고 '흔한' 요령을 모은다.
2. 그런 요령에 따라 만화가 아닌 '이야기'가 완성되는 전 과정을 찬찬히 추적한다.
3. 잘못된 부분, 최선이 아닌 부분이 있다면 짚어본다.
4. 출판 만화(상업만화, 인디만화)의 경우. 웹툰의 경우로 나눠서 풀어간다.

흔히 국내 만화를 두고 '그림은 잘 그리는데 만화는 못 그린다'는 소리를 한다. 그림을 이야기에 따라 이럭저럭 배열해 놓으면 다 만화 아닌가? 그렇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좋은' 만화가 아니다. 한편의 만화 에피소드는 잘 설계된 기계이자, 설령 비대칭의 모습를 하고 있더라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아름다운 탑이다.
새로운 작법서가 나온다면, 그 내용은 무너지지 않는 탑을 쌓아가는 방법이어야 하며, 그 다음엔 탑을 아름답게 조형하는 이야기여야 한다.
'톤'바르고 '자선'긋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만화'라는 '이야기'툴(TOOL)을 100% 사용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