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위의 통나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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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13-멀어지는 세계 그 밖의 이야기

무슨일이든 언제나 하여가를 부르며 '실리'를 쫓던 녀석들 둘이, 노 대통령 서거 이후 잠시 숙연해진 적이 있었다. 사람의 생각이 변하는 대목은 설득에 의해서 보다는 감정에 충격이 가해질 때 더 많았기에, '죽은 시대'를 분기점 삼아 이 두 친구의 살아가는 방식이 예전보다는 짐을 내려놓는 쪽으로 바뀌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반 년이 지난 지금, 두 친구의 '질주속도'는 예전보다 더 빠르고 야박해졌다. 솔직히 좀 무섭다.

머리깎으러 미용실에 들렀다가 오랜만에 중앙일보를 읽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여당 내부의 세종시 논란과 결부시켜 놓은 글이었다. 원안 그대로의 추진을 말하는 박근혜를 견제하려는 친이계의 의도와 사전 발간 시기가 의도적으로 맞물려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아버지를 친일파로 내몰음으로) 이 글 또한 '오른쪽과 왼쪽'의 관점 차이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면서 잠시 머리를 싸맸지만,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 책마저도 '손익'을 두고 오가는 공방의 도구로 해석해야 하는가. 세상은 이미 그런 셀로판지 너머로 볼수 밖에 없는 걸까.

내가 지금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응시하는 건 '한나라'를 까려는 내 총체적 의지의 발로인가? 아니, 어제 한 고비를 넘겨 조금 편한 마음으로 땡땡이 치고 있는 것뿐이다. 저 기삿글은 요즘 나의 말버릇대로 풀자면 '개연성에 위배되는 상상력'이다.
아니, 받아들이는 정도나 관점의 차이를 넘어서 이젠 중앙일보와 그 세계관 아래 놓인 대다수의 사람들과 서로 다른 울타리로써 분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문득 받았다.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세상이 수백 수천년 가까이 이런 식으로 야박하게 돌아간다면. 강남과 그 이외 지역 사람들간의 '유전적' 차이가 발생해 '섞이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단 상상을 해본다. 실제 DNA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미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손해보고 사는 것이 열성 취급 당하는 세상의 공기는 이미 내 폐를 가득 채우고 있다.
공기를 받아들인 누군가과 호흡이 가쁜 누군가는, 더는 섞일 수 없는 살갗처럼 마음마저 그렇게 멀어져 간다.
언젠가 술자리에 둘러앉은 친구들이 '중앙일보' 못지 않는 모진 상상력으로 하여가를 부를 때 구석의 나는 무슨 궤변인 듯 '손해보는 부끄러움'을 토해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