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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만화! : 90년대 이후 출판만화①- 작품, <이 만화가 대단했다!> 2014, 만화!

(이 '만화이야기 시리즈'는 일개 독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잡담으로
가끔 논리가 우주로 비약하기도 하며, 엄한 약을 팔기도 합니다. 
뜬금없는 스페이스 오페라(?) 분위기에 적응 안 되시는 분들은 백스페이스를!)


‘쓸데없이 긴’ 서문에 밝혔다시피, 저는 80년대 만화판은 잘 모릅니다. (사실 90년대 이후 만화도 잘 모르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

 그 시절 보물섬과 만화왕국을 보기는 했습니다. 코흘리면서요. 보물섬의 ‘둘리’와 ‘하니’, 만화왕국의 ‘고독한 레인저’ 등등이 기억납니다. 집에 있던 계몽사 학습만화 세계사&한국사나 이상무 화백의 ‘달려라 꼴지’ 말고도 ‘세상엔 이렇게나 많은 만화가 있구나’하며 좋아했었죠.
다만 그땐 너무 어렸습니다. 이제와서는 그때 그 작품들의 단편적인 스토리와 이미지만을 일부 기억할 뿐, 작품들 주변을 둘러싼 의미를 파헤치기에는 그런 기억들만으로는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위키나 여러 만화웹진, 마니악한 블로그, 그리고 자랑스런대한의엔하위키(…)를 통해 그 시절 그 작품에 대해, 내 또래이거나 몇 살 차이 안 나는 형님동생들이 조합해 놓은 아카이브를 훑다보면 ‘아, 그게 그런 거였구나!’하며 감회에 젖고는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빌려온들 그건 온전한 제 감상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90년대 이후의 만화이야기, 좁혀서 상업출판만화이야기만 하겠습니다. 이른바,

조중동(?)‘서.대.학.’ 트라이앵글.


연혁

박재동 선생 같은 만평작가가 활약하던 일간신문이라든가,
대본소시절부터 이어진 무협이나 조폭만화라든가.
학급에 비치되던 학생신문 속의 명랑만화라든가.
첫 태동하던 동인 혹은 인디만화라든가.
그리고 '학생과학' 같은 이상한 만화(?)잡지라든가(…).

90년대 만화에는 높고 낮은 여러 ‘지형’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규모로 보나 역동성에서나 가장 크고 화려했던 곳, 바로 일본출판만화잡지를 벤치마킹하여 신진작가군을 발굴하는 동시에, 일본들의 유명만화를 가져와 파는 것으로 ‘장사’를 시작한 ‘상업만화잡지’ 시장.

 그곳에는 서울문화사, 대원씨아이, 그리고 후발주자이자 대원의 자회사인 학산문화사가 있었더랬습니다.
서울의 주간 아이큐점프―현재 격주간 코믹진 점프(라고 읽고 죽다 살아난 점프라고 부릅니다 =_=)는 88년 창간.
대원의 주간 소년점프―현재 격주간 챔프 넥스트 제너레이션(이라고 읽고 ‘라스트 제너레이션’이라고 부릅니다. =_=)―는 91년 창간.
학산의 주간 코믹매거진 찬스―현재 월간 찬스 플러스(라고 읽고 ‘찬스 마이너스’라고 부릅니다. =_=)―는 95년 창간.

출판사마다 각각 영점프, 영챔프, 부킹이라는 청년지가 소년지들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창간되어 오랜 시간 간행되었지만, 지난해 영챔프와 코믹챔프의 합병을 끝으로 이들 청년지들은 사실상 모두 폐간되었습니다. '투엔티세븐' 같은 성인지 계열도 있었지만 작품과 시장 모두 미미한 채로 사라졌기에 논외로 하겠습니다. ‘남겨진 자들’(?)은 모두 소년지이지만, 실제 잡지를 들여다보면 잡지 통폐합 와중에 살아남은 작품들이 한집에 모여 ‘무지개빛’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챔프 넥스트…’을 보자면 ‘짱’(소년챔프)과 ‘심연의 카발리어’(영챔프)와 ‘위치헌터’(팡팡)가 한데모여 있으니까요. 점프나 찬스 쪽은 라인업이 거의 세대교체가 이뤄진 상태라 올드팬들이 보면 ‘이게 뭔가’ 싶기는 하겠으나, 사실 그게 맞는 거죠.(경로당도 아니고 =_=)
그럼 이 분위기 썰렁해져만가는 ‘세계’의 유산 중 밝은 부분부터 짚고 갑니다. 먼저―



명(明)

작품

어떤 시스템의 존재 이유는,
결국 그 안에 투신해 성장한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만들어낸 유무형의 결과물을 키워가는 것이겠죠. 20년 세월동안 연재되었고, 또 완결된 수많은 만화들. 그 사이 데뷔했고, 아직 연재중이거나, 연재를 마친 작가님들. 그 중에서,
 

<1990~현재, 내맘대로지만 이 만화가 대단했다!>


를 꼽아봤습니다. 


점프(서울)
협객 붉은매('배'를 갈아타심), 진짜사나이, 천랑열전, 힙합
챔프(대원)
짱, 프리스트, 웨스턴샷건, 강호패도기, 아일랜드, 열혈강호
찬스&부킹(학산)
용비불패, 베리타스, 메탈하트, 수요전


물론 선정하지 않은 작품들 중에도 수작이 많습니다. 그런 작품들을 제외시킨 나름대로의 이유를 꼽아보자면, 예를 들어 다음과 같습니다.

'스카이레슬러'(장태산), ‘서울협객전’, ‘키드갱’(신영우)
90년대 ‘서대학’ 3사가 꾸린 만화시스템 아래 새로이 탄생한 형태의 만화가 아니라 이전 세대의 영향이 짙은 작품들이기 때문에.

‘마제’(김재환&나인수)
준수한 작화, 그리고 소재가 서구독자들에게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큰 성공을 거뒀지만, 작품 중반 이후 앞서 늘어놓은 큰 성과를 무색하게 할 만큼 지독한 매너리즘에 빠졌기 때문에.

‘레드블러드’(김태형), ‘천추’(김성재&김병진)
비할 데 없이 훌륭한 작화와 연출을 보여줬지만, 스토리나 그밖의 부분에서 장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어쩐지저녁’(이명진), ‘선녀강림’(유현), 굿모닝티쳐(서영웅)
인기는 굉장했지만, 트렌디 코드의 만화들이라 세대를 건너서도 남겨질 만한 가치는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하여 제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저 위의 작품들을 ‘이 만화가 대단했다’로 고른 이유는,


‘열혈강호’, ‘용비불패’
비록 무협이라는 오래된 장르에 본적을 두고 있기에 ‘키드갱’과 마찬가지 이유로 제외를 시킬 법도 했지만, 분명 90년대 출판만화 생태계 속에서 태어나, 이미 하나의 커다란 지표(指標)가 되어버린 작품들이기 때문에.

‘협객 붉은매’, ‘진짜사나이’, ‘짱’
무협&폭력이라는 이전세대 만화판의 메인 장르를 ‘학원’ 배경, 혹은 ‘일본 소년만화’의 구성방식을 빌려와 적절히 뒤섞어 한국식 소년만화로서 재탄생시켰기 때문에.

‘힙합’, ‘프리스트’, ‘웨스턴샷건’, ‘강호패도기’, ‘아일랜드’
이전에 없던 장르, 작풍을 선보이면서 한국만화의 폭을 넓혔기 때문에.

‘천랑열전’, ‘베리타스’, ‘메탈하트’, ‘수요전’
일본만화의 영향이 ‘증후군’ 수준에서 그친 게 아니라, 비로소 ‘완전이식’되어 탄생한 작품들이기 때문에.


― 하여 골라보았습니다.

그럼 그 중에 좋은 예시가 될만한 두 작품만 골라 조금 길게 썰을 풉니다.

아주 오래 전에 ‘짱’에 대한 긴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 글을 다시 읽어보면 관점이 많이 달라져서 헛웃음 나오는 곳도 여럿 있지만, ‘짱’이 손에 꼽을 명작이라는 기본적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조금 늦게 연재가 시작되었다는 점을 빼면(1996년) 90년대 출판만화의 진정한 적자(嫡子)이자 산증인이며, 내용면에서 매너리즘에 빠졌다한들 여전히 치열한 작화를 선보이고 있으며, 거기에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주는 재미를 더해 결코 적지 않은 올드팬들의 손을 놔주지 않고 있다는 점. 그것이 짱의 매력이라고 봅니다. 적어도 액션연출 하나만큼은 한일 양국 작품 통틀어 ‘짱’만한 작품이 몇 없다고 생각합니다.(…요즘 연출도 좀 늘어지긴 하지만 말이죠 =_=)

 거기 더해 90년대 출판만화 중에서도 특별한 이정표라고 할만한 '우수상'을 딱 하나 더 파보겠습니다. 그에 앞서 다른 작품(작가)들을 본선(?) 탈락시킨 이유를 적자면,


―아직도 ‘힙합’에 정 못 떼고 계신 듯한 김수용 작가님 탈락! 학습만화하랴 미국만화하랴 연재 마무리 안 하고 끝없이 외도 중인(완결 낼 생각 전혀 없는 것이 분명한) ‘프리스트’ 형민우 작가님 탈락! ‘강호패도기’라는 무협신천지를 열었지만 연재종료 후 일본진출을 염두에 둔 ‘듯’한 단편이 성과 없었던 ‘듯’하고(…), 웬 ‘막걸리만화’하시면서 생계모드로 들어가신 듯한 최미르 작가님 탈락! ‘아일랜드’&‘천랑열전’&‘베리타스’ 등 중도해외진출(혹은 모색)팀(?) 탈락! 오리지널 스토리로는 더는 승산 없다 판단하셨는지 아트림이나 라노벨에 끈을 대며 생명연장중인 ‘메탈하트’ 윤재호 작가님 탈락! 클로킹상태인 분 탈락!―

하니,
박민서 작가님의 ‘웨스턴샷건’이 남았습니다.


‘웨스턴샷건’은 20권 이상 발간되며 장수한 90년 대 한국만화타이틀 중에서도 가장 바람직하면서도 온전한 형태로 완결된 작품이자(그런 작품이 거의 없으니 문제…), 1권과 40권의 책을 펼쳐놓고 비교만 하더라도 눈에 확 들어오듯, 작화쪽에서 멋진 성장을 일궈낸 작품(작가님)입니다. 스팅 우드맥과 골드로마니 자매, 척 블랙, 레드 클라우드 등 주조연 할 것 없이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독자의 호불호를 분명히 가릴 수 있기에 역설적으로 작품의 ‘유니크’함을 스스로 증명한다는 점. 그럼에도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는 점. ‘샷건’ 완결 후에도 ‘다크에어’라는, 시장상황이 예전같았다면 분명 어느 정도 성공적인 연착륙이 되었을 후속작을 들고와 ‘챔프’에 지금도 연재중이라는 점(=_= 뭐 이젠 완결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러한 점 때문에 저는 ‘웨스턴샷건’이 ‘짱’과 더불어 90년대 한국만화가 우리에게 남겨준 대표적인 유산이라고 꼽습니다.


그중 우수하다며 열거한 위의 작품들조차 장점만 있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본 마냥 100년의 세월을 거치며 쭈욱 축적되어온 만화판의 노하우와 전통, 빵빵한 인프라는 고사하고, 80년대와는 상당부분 불연속인데다가 격하게 짠 원고료 받으며 눈대중(?)과 깡으로 일궈낸 성과가 이 정도라면 하루종일 박수를 쳐도 모자랄 만큼 상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이 시절 만화의 '파급과 수출'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고, 그 다음에는 90년대 출판만화의 암(暗) 편(!)으로 넘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2000년 이후의 포스트 상업출판만화, 그리고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웹툰의 현황 및 특성과 웹툰 기반 OSMU 활성화 방안 - 한국콘텐츠진흥원> 보고서에 대한 짧막(?) 분석들도 이어집니다.

<언젠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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