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위의 통나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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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전 첫 장을 마무리하며 그림잡상일기

 장편소설을 하나 썼다.
 1월 4일부터 2월 10일까지. 기억 속 미로를 걷듯 써내려갔다.
 '이런 엔딩을 맞을 것이다', 이 미로 어디쯤 빛이 보일 것이다' 하며, 그렇게 완성된 원고지 1040매 분량의 이야기를 투고했다. 초고였고, 고칠 틈이 없었다.

 결과는 어쩌면 정해져있었는지도 모른다. 
 하루에 아침 저녁 두번씩 '말도 안 돼!'라며 혼잣말 할 만큼 개연성에도 좀 문제가 있었거니와.
 글은 마치 벌레 파먹힌 나뭇잎-문장 일색의 나무 같았다.  
 애초 이 소설은 기존 라이트노벨의 틀에 맞춰 쓴 이야기가 아니다. 터무니없는 이단(異端)이다. 장르 관습을 노골적으로 디스한다. right novel이 아닌 left novel이었고, light novel 이 아닌 full-wheighted novel 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거기에 투고했나 싶기도 하지만, 후회하되 후회하지 않는다. 
 단지 고생한 이야기속 아이들―캐릭터들에게 미안하고 또 부끄럽다. 내 힘이 모자란 것이 부끄럽다.
 
 아주 자전적인 이야기였다. 또한 세계와 삶과 죽음과 고통에 대한 우화였다.
 나는 그 위에 지난 10여 년 동안 품어온 이야기인 SF판타지 '마녀전'의 유산과,
 마녀사냥의 오랜 알레고리와, 
 현실을 뒤섞어,
 '마녀전'의 첫 번째 이야기로 다듬어냈다.

 쓰는 내내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마침표를 찍던 그날 자정 노트북을 앞에 두고 눈물을 쏟았다. 구원받은 기분이었다. 이런 기쁨을 계속 느낄 수 있다면 죽는 그 순간까지 이야기를, 글을, 만화를 놓지 않겠다고, 그날 그렇게 되뇌었다. 그 기억이 흐릿해지기 전에 소회를 남긴다. 새긴다. 처절하도록 아름다웠던 소년소녀의 여정을 돌이켜본다. 거대한 원 같은 바깥세상의 새하얀 추위와, 그 동심원 한가운데 서로를 끌어안은 두 아이를 기억한다.

 고맙다.
 계속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어디 하나 마음 굽은 곳 없이, 
혹한의 서울을 누비며 외진 사람들을 보듬은 어린 소녀와.

그녀와 함께한 여정을 통해 죽음을 극복하고 삶을 되찾은 한 소년에게.

나는 큰 빚을 졌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살아가자.


Witch's Digest 0


일단락.


엔딩곡은
서태지의 '10월 4일'과 '아침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