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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紙の月, 2014) 실사영화


(스포일러 없는 대신 블로그에 먼지가 두터우니 양말 신고 어서옵쇼!)

 주인공 리카는 줄곧 성당 안에서 살아왔다. 그녀가 다녔던 미션스쿨에서는 윤색된 돈을 통제범위 안에서 사용하는 방법만을 가르친다. 리카가 순진하게도 그 통제를 거스르자 수녀는 경고한다. 자기가 뭘 잘못했냐는 리카의 물음은 억눌린다.
 시간이 지나고 그런 물음은 그녀 머릿속에서 차차 사라졌다. 평범한 어른이자 유부녀가 된 그녀는 몇 년간 은행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하다가 계약직 영업사원으로 나름 승진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은행은 미션스쿨의 연장이다. 온통 은백색으로 설계된 은행 안에서 창구의 그녀 혹은 데스크의 그들은 자본주의 원리인 돈을 만지는 성직을 수행한다. 누군가는 선임수녀역을 자처하며 수녀들을 감시한다. 누군가는 ‘까짓 거 흔한 일’이라며 십자가 아래 몰래 방종한다. 리카 역시 차츰 방종하고, 그 과정과 파국을 담아낸 것이 이 영화의 줄기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녀가 과거 얻지 못했던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방종했다거나 하는 식이 아니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올랐으니 혼나야지'하는 장르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가 저지른 행동의 결과는 수십 년 전 품었던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답이 되어, 의도했던 바가 아니되 인생의 당연한 귀결처럼 결말부에 돌아온다.

지금은 이 나라가 더 그렇지만, 멀지 않은 과거에 일본은 자본주의의 끝을 보았고, 것도 모자라 거품 샤워에, 그 국민마저 ‘경제동물’이란 비아냥을 듣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이라고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근데 리카가 기만하고 다닌 고객들은 전부 일본풍 대저택의 소유자들이다. 버블 직전에 은퇴해 엄청난 자산을 쌓아놓고 느긋한 말년을 보내려던 전후일본성장기의 최고 수혜자들이다. 리카의 방종을 눈치 채고 고발한 선임수녀는 마지막 순간 결국 자기자신이나 리카나 별반 다름없는 신세임을 고백한다. 그저 머리 위에 십자가가 더 무겁게 느껴졌을 뿐이라고. 영화를 보면 그 고객, 그 선임수녀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그 십자가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십자가, 자본, 혹은 돈. 그 자리에 나쁜 무엇을 대신 가져다놓아도 좋다. 요즘 아무나 다 좋아한다는 19금 만화 유료웹진 이런 거 가져다놓아도 좋다(?!).

 누군가 행복해졌으면 하고, 그로 인해 나 역시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은 수단을 통해 이뤄지지 않는다. 결코.
 솔직히 말해 테마만 놓고 보면 좀 유치한데다 으레 그 일본영화스런 연출이 좀 싱겁긴 해도 이만하면 괜찮다. 트로피 받을 만하다.

P.S.
-영화에 앞서 TV드라마화가 되었다던데, 그쪽은 아마도 영화와는 많이 다르지 않을까 싶다. 훨씬 장르적일 터.
-감독 요시다 다이하치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를 연출했다. ‘키리시마’는 이 근래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일본영화 중 최고의 작품이었다. ‘종이달’과 그 역시 소설 원작이긴 하지만. 이 양반 꽤나 솜씨가 좋으니 앞으로의 필모그래피를 기대해볼만 하다.
-아이고. 오랜만이다.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