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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극장용(?) 애니메이션 단평 PART1_181130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
 청년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작품. 탈아입구가 100년 숙원이던 나라에서 태어나 자란 탓에 생겼을 정체성 혼란이 없는 유일한 작품이기도. 투니버스의 스튜디오 붐붐을 통해 처음 영상 클립을 접한 그날부터, 1년쯤 지나 비로소 영화 전체를 감상하게 된 그날까지. 정말 긴 기다림이었다. 탄탄한 서사, 약동하는 회화, 선구적으로 도입한 디지털파트, 악마 저리 가라 할 만큼 스태프를, 그 결과물을 쥐어짜고 또 쥐어짰을 영감님. 그 끝에 남는 온전한 의미, ‘살아라’.
 졌다.
 언젠가 영감님이 프레데릭 벡의 작품을 보다가 동행에게 ‘우린 안 될 거야’란 이야기를 했다카더라. 황의웅 씨의 책 본문이었을 것이다. 꿈과 멀어진 지금도 이 영화를 보다가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는 평생 못 할 거야.’

(ただ、生きろ。)


패트레이버2
 오시이 마모루 최고 걸작은 이것. 아니, 걸작이라기보다는 가장 MAMORUTIC하다. 이 작품을 건너뛴 채 <공각기동대>를 논할 수 있을까? 스타일 확립 차원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준다. <이노센트>도 그렇고, <인랑>도 결국에는 오시이의 작품이었다고 치자.
 누군가 ‘웃기지 마, 애송이! 최고 걸작은 뷰티풀 드리머야!’라며 성을 내겠지만 아재인증에는 귀를 닫는다. 스무 살 즈음부터 4, 5년에 한 번씩 자의타의 랜덤으로 감상해온 것 같은데, 매번 맛이 다르다. 이 화풍(畫風)이 지닌 고유의 심도를 재확인 및 갱신해간다.
 


톱을 노려라! 2 다이버스터
 “<건버스터>랑 <다이버스터>, 둘 중 뭐가 좋냐?”
 “왜 다들 <건버스터>냐? 난 <다이버스터>야.”
 2006년인가 부천. 새벽의 합체 극장판 클라이맥스. 처음 보는 건버스터 시리즈. 드럼세탁기처럼 빙글빙글 도는 노노와 라르크의 더블 이나즈마에 상영관 가득 들어찬 덕후 연대 모퉁이에서 반란군처럼 빵 터졌다. 상영이 끝난 뒤 동행한 친구(?) 둘은 서로 다른 이유로 내가 금기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나는 거꾸로 질문을 던졌다. 인간관계든 축구든 1:2가 가장 괴롭다는 말은 내겐 통하지 않았다.
 새벽지하철 1호선을 타고 서울과 경기도의 접경을 주유하는 동안, 느그버스터 디스전으로 시작해, 너님은 왜 스물여섯 처먹고 이딴 덕질이나 하고 계신지 격론을 거쳐, 결국 부둥켜 안은 세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맛없는 카스 330ml으로 건배한 뒤 서로의 자취방으로 흩어졌다.
  그 후로 10년쯤 지났다.
  한 놈과는 연락이 끊긴 것이나 다름없다. 놈의 프사에는 시한부 인생처럼 석양이 진다.
  다른 한 놈은 노리코보다 1만2천 배는 좋아서 결혼했을 마누라와 그 자식 때문에 삶이 힘겹다.
  그래도 녀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톱을 노려라! 2의 마지막 디스크를 꺼내, 그 마지막 부분만 돌려본다. 더블 이나즈마킥 말고.
  조류학자가 된 라르크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그 순간을.
  당신과 나의 인생 이야기를.
 

なぜならばー